직장인의 일기_ 맞벌이 부부의 짧은 하루



밤 9시 10분. 
퇴근 길에 문자가 왔다. 팀장이었다. 
 
내일 아침 9시 본부장과 부사장과의 판매 부진 대책회의가 잡혔다. 
본부장이 팀장들에게 8시 회의를 소집했다. 
팀장은 파트장들에게 7시에 출근해서 자료를 만들라고 했다. 
오늘 부터 시작한 회사의 큰 행사에 첫날 매출이 좋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내리 사랑은 계속 된다.
물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발이 불타고 있어야만  움직인다. 

 

밤 10시.
집에 도착하니 아이가 누워있다. 
아침부터 몸이 별로 안좋다고 하더니 학교에 돌아와서 토했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말라버린 입술을 보니 마음이 아팟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쌀죽을 겨우 몇 숟갈 먹였다. 

밤 11시.
쌀죽을 다 토해냈다. 힘들어 하며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1시.
울면서 깨어나더니 아까 다시 먹었던 물마저도 다 토해냈다. 
아이는 계속 울었다. 새벽 2시가 되어서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하려면 6시 1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아침 6시.
4시간도 자지 못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겨우 7시에 회사에 도착해서 자료를 만들어 주었다. 
팀장은 본부장 회의에 들어갔다. 

8시 30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픈 아이를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데려다 주려 하는데 아이가 계속 운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장염인가 보다. 걸을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것 같아서 학교에 못가겠다는 것이다. 
아내는 교육 담당자다. 9시반 부터 있을 교육에 직접 강의를 해야 한다. 
아내의 마음도 거의 울고 있으리라. 

바로 휴가를 올렸다. 
시간이 8시 30분이니 아직 출근 전이다. 
당연히 조퇴나 반차도 쓸 수 없다. 
하루 휴가를 올렸다. 행선지에 '자녀병원'이라고 적었다. 

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외투를 집어들고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탔다.
거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았다. 
 












아내는 미안해 한다. 
"이번 달 말이 고과평가 기간이라, 하루 빠지거나 하면 영향이 있을까봐. 미안해 남편"
이해한다.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내도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로 뛰어 갔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학교에 가려고 옷을 입은채 그대로다.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앞으로 최소 40년은 더 살아야 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렵더라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으로 바꾸는 노동에서 나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으로,
내가 없는 일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의미 있는 일로 바꿔야 한다. 


다른이가 말해서 시작된 변화가 아닌, 나의 간절한 필요에 의한 변화가 필요하다.  
남과 환경에 떠밀린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순응일 뿐이다. 

그렇게 12년차 맞벌이 부부의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2016. 03   아픈 아이를 위해 새벽 출근 후 돌아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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