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16 _ '회사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미래에 뛰어든 남자 1



▶ 자기소개를 해 달라.

저는 미래 소식을 전하는미래캐스터(Future Caster)’ 황준원 입니다. 1983년생 33살 입니다. 미래 소식을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커리어 소개를 부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고등학교 때 공부에 손을 놓았고 자퇴까지 생각했었다. 그 당시 대학에 가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작곡 공부를 했었다. 2002년에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에 바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맘 잡고 다시 공부를 했다. 2004년에 인하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한학기만 다니고 바로 휴학을 하고 음악 공부를 했다. 나는 외동아들인데 아버지께서 23살 때 돌아가시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음악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밥벌이를 하기 위한 취업을 위해서였다. 일어전공이니 일본어 자격증을 따고 스펙을 위해서 토익 공부도 엄청 빡시게 해서 975점을 받았다.

2009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병원 인사팀에 입사했다. 사립대학교 교직원이면 상당히 안정적인 곳이어서 어머니께서 기뻐하셨었다. 하지만 나는 입사 합격 통지를 받고부터 무언가가 목을 죄어 오는 공포를 느꼈다. 입사를 위해서만 보낸 시간 동안 전혀 생각지도 않은 폐쇄공포와 비슷한 것이었다. 쉽게 잘리지 않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려는 의욕은 전혀 없고 잘리지 않기 위해서 라인타기, 파벌 싸움을 입사하자마자 목도하게 되었다.  oo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쪽과 oo대학교 쪽으로 나뉘어 서로 싸웠다. 드라마에서 충격을 받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느낌을 입사 후 2달만에 몸으로 알게 되었다. 머리가 띵 해 지면서 주변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현상이 자주 생겼다.

입사 후 3개월 만에 인하대학교 병원을 그만두었다. 나는 인천 토박이라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직장이었는데 그 길을 걸어가는 것조차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격하게 반응을 했다. 회사만 가면 머리가 멍해지고 뒷목이 뻣뻣해 지며 모든 생각이 멈추는 그런 상황이 자주 생겼다. 원했던 직장도 아니었고 나를 표현 할 방법이 없는 일이 힘들었다. 일하다가 바람을 쐬러 나와도 온통 환자밖에 없어서 힐링이 아니라 더욱 힘이 빠졌던 것 같다. 나라는 Human Being은 회사라는 곳과 전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대단히 자유로운 영혼인데 옷 입는 것부터 기계에 유니폼을 입힌 것 같은 정장 차림도 나를 속박한 하나의 이유였다. 그 때 사진을 보면 욕망이 거세당한 나의 모습 그대로 인 것 같다.

 

▶ 3개월 만에 첫 회사를 그만뒀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나는 전공도 어학이어서 해외를 상대로 하는 일을 늘 꿈꿔왔다. 그렇다면 공부를 제대로 해서 일어, 영어를 더 잘해서 사람들이 나를 찾게 해야 만들고 싶었다. 어학공부를 하던 중에 인천시 관광협회에서 영어 통역담당을 구하는 공고를 봤다. 보수는 적었지만저 일을 하면 돈도 받으면서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원했고 합격했다. 인천시의 관광안내소에서 일을 했다. 사실 나는 일어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영어는 토익만 975점 일뿐 말은 거의 못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오는 전화에 응대도 제대로 못했었다. 비는 시간에 미드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미친듯이 했다. 그러다 보니 영어 회화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솔직히 이 곳은 내가 다녀본 직장 중에 최고였다. 다른 근무자들의 만족도도 엄청나게 좋았다. 돈은 적게 받아도 시간이 여유롭고 조직 내 서열도 없었고 자유로운 업무환경에서 일하며 언어를 배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사람은 도움이 필요해서 오는데 그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갑질도 안 한다. 오히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얘기해 준다. 그렇기에 소위 감정노동이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만족도가 높았다. 돈을 받고 사람들을 돕고 그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니 이처럼 좋은 일이 없었다. 안타까운 점은 딱 하나, 어린 마음에 어디 가서나 관광 안내소에서 일해라고 말하는 것이 좀 창피할 뿐이었다. 남들에게 말하면 그냥안내원같은 느낌이어서 특히 여자사람들에게 창피했다. 그리고 어차피 계약직 이지만 뭔가 남자라면 더 큰 일을 해봐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아마 지금 선택하라면 이 일을 계속하면서 동시에 다른 투잡을 했을 것 같다.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다. 당시 같이 일했던 선배는 아직도 다니고 있다. 외국인을 돕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고 스트레스도 없는 직업,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꿈의 직업 아닌가? 많은 직장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만한 직장이 없는 것 같다.

 

▶ 그러면 그 멋진 일은 왜 그만 두었나?

그 때 고민을 한 것은 두 가지였다. “여기에 다니면서 투잡을 할 것인가? 아니면 대기업에 도전해 볼까?” 그러던 중 팬택의 해외영업 부분에 원서를 내고 합격 되었다. 회사라는 곳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해외영업이라는 직무는 꼭 경험해 보고 싶어서 원서를 냈다. 하지만 입사를 하고 나니국내영업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팬택에서 했던 일은 한마디로 재고를 떨어내는 일이었다. 당시 스마트폰이 활성화 되어서 베가X 같은 모델이 나올 때 였는데 재고로 남은 피쳐폰을 대리점에 떨어내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이미 스마트 폰으로 시장이 넘어온 상황이어서 남은 재고폰을 파는 것은 가격을 낮춰주고 대리점주에게 읍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이러한 영업 일이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신입사원에게 300만원 정도의 월급을 주는 회사는 흔치 않다 보니 조금은 갈등을 했다. 하지만 인하대 병원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나의 뉴런 구조와 대기업 회사 일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출근할 때 마다 죽으러 가는 것 같았고, 일터에서는 정신이 멍해져서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돈을 꽤 주는 일인데 성격을 180도 바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갈등을 많이 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해외영업으로 이동을 요청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기에 미련 없이 나왔다.

 

▶ 뭔가 확정되고 결정지어진 관계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아니 못 견디는 것 같은데

맞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병명을 붙였다. 확정 공포증이 그것이다. 무언가가 확정되어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결정되는 것을 참기 힘들어 하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는 거의 참는 것이 불가능 했다. 팬택을 나온 이후 뚜렷이 할 것이 없어서그래도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곳의해외영업쪽에 지원을 했었다. 합격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수 없었다. 그전 회사에서의 그런 답답하고 견딜 수 없는 그 느낌이 트라우마 처럼 떠올라였다.

 

▶ 회사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은 것 같다.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회사라는 곳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하기에 적합한 인간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 회사를 생각하면 구박받았던 기억뿐이어서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뭐를 조금이라도 알려주고 혼을 내면 이해라도 할 텐데 아무것도 없이 모른다고 혼만 내니 더더욱 좋지 않은 기억만 쌓였다. 팬택에서 일했던 짧은 시간은 전쟁의 기간이었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분위기가 모두 전쟁터였다. “, 삼성 애들 지금 뭐 하는지 빨리 알아봐.” “, 보조금을 올렸다고?” “걔내들이 똑똑한 애들인데 괜히 그러지는 않았을 꺼야.” 하면서 남을 따라 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아직도 옥상에서 어느 부장님이 해 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 준원아. 회사는 왜 들어 왔냐? 회사는 힘들다. 돌아갈 데가 있으면 돌아가라라는 말을 했다. 그 분은 꽤 잘나갔던 분이었는데 술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낙심했다. 힘들고 어려워도 윗사람이 뭔가 동기부여가 되면 좋겠는데 너무 힘들다는 얘기만 하니결국  나도 결국 저렇게 되겠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인공지능 콘서트>


 

▶ 많은 젊은 직장인들이 옆자리의 선배처럼 되겠구나.. 하며 낙담을 한다. 왜 본인도 옆자리에 선배와 똑같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나?

물론 여기에서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기회를 잡아서 더 성장해서 옆자리 선배처럼 안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생각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나의 천성과 맞지 않는 일인데 굳이 내가 이런 스트레스를 여기서 견뎌야 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또 하나는 기회의 문제였다. 내 나이가 29살 이었는데 지금 내가 나와 맞지 않는 곳을 떠나지 않으면 더 이상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입사원 채용의 마지막 나이를 그저 무작정 참으며 견디는 것을 아니라고 생각했다.

 

▶ 경력이 짧고 일관성이 적은데 커리어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본인은 궁극적으로 어떤 회사에 들어간다면 흥미를 붙이고 오래 다녔을 것 같나?

없는 것 같다. 회사에 다닌다는 생각은 현재는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회사가 영국의 ‘Virgin’인데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차라리 버진과 같은 회사를 내가 만들던가 아니면 나와 파트너십을 맺고 일하는 것은 가능할 것도 같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보면 회사라는 조직에 몸을 담그는 것은 나의 Nature와 맞지 않는 일이다.

 

▶ 그럼 회사 다닐 때 본인은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었나?

항상이게 뭐지? 왜 이래야 하지?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왜 저래야만 하지?’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회사에 있는 선배들이 하는 일과 그 이유에 대해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답답했다.

 

▶ 회사를 짧게 다니고 또 지금은 회사원이 아닌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뭐라고 했나?

인하대 병원을 그만둘 때는 안타까워하셨다. 그 외에 특별히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어릴 적부터 얻어 키웠다고 할 정도로 간섭을 크게 하시지 않고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놔둬도 알아서 길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지켜보고 계시다.

 

▶ 마지막으로 팬택이 회사로서는 마지막인가? 왜 떠났나?

내 선배들이 왜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해를 못했다. 언제까지 월요병을 겪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다른 회사에 지원을 하는 것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내가 회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행복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회사를 떠났다. 행복할 수 있는 희망이 회사 안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 회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절대로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굳게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저렇게 안주해있지 말아야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다짜고짜 혼내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패스트 팔로잉만 해서는 절대로 즐겁게 일할 수 없겠구나. 따라가는 인생을 살지 말아야겠다.” 이런 것들이 내가 배운 것이다. 동기 중에서 아직도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회사는 어디 가나 똑같이 힘들다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개선을 시키는 것이 맞는데남이 힘드니까 나도 힘든 것이 맞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몇 십년 동안 이 상황을 그냥 힘든 채로 버텨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냥 버티는 것은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솔직히 회사에서는 배울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 무언가를 준비하고 그만둔 건 아닌 것 같다. 팬택을 나오고서는 어떤 일을 했는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암흑기였다. 왜냐하면 그 전까지는 스펙만 쌓아서 회사만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회사형 인간이 절대 아니구나. 절대로 회사라는 곳을 못 다니겠구나.’ 라는 확신은 갖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해답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를 책을 읽고 책에서 알려준 대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조금 기준이 선 것 같았다. 엑셀로 표를 만들어 나를 분석해 보다 보니 나와 잘 맞는 직종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일, ‘학원강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니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는 일’, ‘말 하는 일’, ‘늦게 일어나도 되는 일’, ‘그리고 돈을 버는 일’, ‘남을 돕는 일이었다.

 

그래서 인천 송도에서 영어 학원강사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갖게 된 소망 하나는웃으며 일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웃을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원에서는 애들을 가르치면서 애들과 깔깔거리면서 웃을 일이 너무 많았다. 또 애들을 가르치면서 조언과 비슷한 얘기를 해주다 보니 나조차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조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애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애들이 말을 안 듣고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구나라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30살의 어른 기준으로 10대를 대하고 있었다. 결국 관점을 바꿔서 애들이 편하고 쉽게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하나? 를 계속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습법을 고민하고 적용하면서 스스로 엄청나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학원 강사 일을 거의 3년을 하면서 나는 애들을 혼내지도 않았기에 학생이나 학부모도 좋아했었다.

 

▶ 어찌 보면 전공도 그렇고 어문계열 일을 했다. 요즘 인문계열, 어문계열 출신이 너무 취업이 어렵다. 그런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학교를 다니면서도 어문계열 후배들에게 다른 과로 전과를 하라고 얘기 했었다. 또 휴학을 하고 세상과 부딪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라고 얘기했었다. 부딪히면서 체험한 배움만이 진정한 최고의 배움이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만 보더라도 어문계열 장점 하나만으로 취업해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문계열만 가지고는 세상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학교도 굳이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4년 동안의 돈과 시간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진짜 필요한 공부와 경험을 쌓는 게 휠씬 더 낫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여행을 다니거나 생각한 것을 창업을 해봐도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래도 도와 줄 수 있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부딪혀 보고 망해보기도 하며 체험을 하는 것이 맞다. 경영을 배우는 것 보다 실제로 리어카 장사라도 창업을 해보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언어를 배우더라고 실제 그 언어를 쓰는 사람과 부대끼며 문화와 함께 흡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배우는 아니 주입 받는 것은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최진석 교수님이라고 있는데 그 분이이론이라는 것은 찌꺼기다라고 말했다. 이미 벌어지고 난 일을 분석해서 그저 이론을 세우는 것뿐인데 그렇게 지나가 버린 것을 학문으로 배우는 것이 진짜 배움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을 사례분석으로 배우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을 좀더 분석해서 자신을 사례로 분석하고 예측해서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문계열 이라면 굳이 대학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일부 학자가 될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인문계열에서 배우는 것은 이제 상식, 필수 교양 수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앞으로 약 10년 정도가 대학교육의 큰 변화시기인 것 같다. 외국처럼 불필요한 과는 없어질 것이고 실력 없는 대학도 사라질 것이다. 그 대신 변화하는 현재에 맞는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 계획 없이 마지막 회사를 떠났다. 왜 그랬나? 두려움은 없었나?

회사에 있으면 하루 종일 멍했다. 회사에서의 나의 상태는 병자와도 같았다. 병을 나으려면 벗어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말할 사람은 동기뿐이었고 선배라고는 말이 아니라 다그치는 사람밖에 없었다. 회사를 떠난다는 두려움 보다는 회사에 있어서 생기는 두려움이 더 컸다. 이대로 있다가는 내가 진짜 몸에 이상이 생기는 병자가 될 것 같았다. 솔직히 무언가 상황이 애매하면 그냥 버티며 다니는 것 같은데 나처럼 확실한 징후가 너무 확실했기에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의외로 너무 잘 다니고 있다. 매일 12시까지 야근하고 있는데 그 친구도 회사에 들어가서 자신과 잘 맞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상태가 너무 한쪽의 극단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이런 것을 느낄 수도 없었다. 퇴사라는 선택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장밋빛 미래가 열리는 것 같았다.

 

▶ 성격이나 마인드가 일반인과는 많이 다르다. 회사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았나?

나를 아는 친구들은너 왜 이렇게 평범해 졌냐?’라는 말을 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회사에서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겨울에 네이비 색 가디건을 셔츠 위에 입었다고 욕을 들었던 거다.  정장도 그레이 칼라 체크 정장을 입었는데 그것 입었다고 이상한 놈이라고 욕을 먹었다. 가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났던 나는괴상하고 요상한 놈이었다. 그런 선배 들에게 칭찬이라고는 한 톨도 들은 것이 없었다. 잔소리와 욕만 먹었다.

 

▶ 선배들이 신입사원에게 왜 그렇게 잔소리만 했다고 생각하나?

글쎄 아마도 살가운 척, 복종하는 척, 치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남들이 하는 행동이 내 기준으로 이해가 안되니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 지금은 미래를 예보하는미래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팬택을 그만두고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그 때부터 책이라는 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계발서나 미래 트랜드 관련 책도 꽤 많이 읽었다. 학원 강사로서 처음에는너희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만 더 좋고 많은 기회가 생긴다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미래의 트랜드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다가올 미래가 지금의 교육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애들에게 이렇게 공부하라고 계속해서 말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암기 위주의 이런 공부만 계속 하다보면 다가올 미래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미래 트랜드 책을 보면 지금의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게 잘못되었고 오히려 그저 삽질을 하는 구나 라고 느꼈다.

미래관련 책과 스님들이 쓴 책도 많이 읽었다. 그 책에서는 현실의 평안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다. 하지만 학원은 미래의 불안을 팔면서 그걸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생이 공부를 더 해서 이런 강의도 들어야 좋은 대학 간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내 생각과 현실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학원 강사 일을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백 달러로 세상에 뛰어 들어라라는 책과관점을 디자인하라”, ‘평생 월급보장 프로젝트라는 책을 읽고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돈 없이도 인터넷을 발판으로 Lean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면 무엇이라도 시작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미래 트랜드 책에는 별로 이견이 없다. 거의 같은 방향성을 이야기 한다. 그 중디지털 노마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일과 직업에 대해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2014 1월에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두었다.

 

▶ 지금 수입을 어떤가? 돈을 벌리나?

아직 벌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확신은 있다. 왜냐하면 나 같은 미래의 트랜드를 소개하고 알려주고 교육하는 일의 필요를 곧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자가 없는 것도 이유다. 솔직히 지금은 나보다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알게 된 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쉬운 용어로 설명하는 능력도 있고 미래 트랜드를 빨리 캐치할 수 있는 영어, 일어를 내가 잘 한다는 것도 이유다. 동영상을 보면서 영어, 일어는 직접 해석하고 자막도 넣는다.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교수나 학자들이 많은데 그 분들이 어려운 말을 쓰고 재미도 없이 딱딱하게 말한다. 그런데 나는 딱 보면 미용사 같은 편한 이미지라 더 쉽게 전달 할 수 있는 외모와 능력도 갖추었다. 그래서 영상이나 자막도 클럽, 팝아트 같은 익숙하고 트랜디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또 나는 이 일을 전부 혼자 하기 때문에 나의 장점을 살려서 패셔너블 하고 쉽고 편하게 게다가 빨리 알려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일이 100%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더 열심히 나의 모든 것을 쏟아서 하고 있다.

 

지금 명확한 BM은 없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면 나중에는 돈이 될 것이다. 지금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은 Tech 기기를 공구라도 하면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큰 무언가를 하고 싶기에 지금은 오히려 미래를 위해 돈 버는 것을 유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새로운 것을 소개하며 남을 돕는 이 일의 가치와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는 나 자체가 브랜드가 될 것이다. 그 이후에 저 사람이 이런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일을 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게 할 것이다. 지금 같은 SNS가 많은 시대에서는 얄팍한 마음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눈치챈다. 미래를 소개하며 남을 돕는 마음을 갖고 행동을 꾸준히 쌓아나가면 나중에는 사람들이 나는 믿고 나와 함께 일을 하자고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일종의 착한 마케팅이다.

 

▶ 사람들이당신 무슨 일을 합니까?” 라고 물으면 무어라고 답하는가?

누군가무슨 일 하냐?’고 물었고 내가 대답을 했을 때 질문자가 쉽게 이해하면 그 일은 이미 확정된 일이고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너 무슨 일 해?’ 라고 물었을 때 설명하기가 어렵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면, 그 일은 앞으로 더 미래가 있는 새로운 일일 것이다. 얘기를 듣고서그 일이 무슨 일입니까?’ 라고 되물을 수 있는 일이 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일이다. 나는 그 질문에나는 미래소식을 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면 나의 동영상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보면 믿기 때문이다. 내가 매주 매일경제 TV에서 새로운 기술 전하는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TV에 고정 출연 한다고 하면 인식이나 대우가 달라진다. 그것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다.

 

▶ 매일경제 TV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프로그램 이름은증시 오늘과 내일이고 출연하는 코너는기술돌풍이다. 우연히 아는 분 소개로 추천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13:00마다 출연을 하는데 프롬프트도 없이 8분짜리를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A4용지 2장짜리 스크립트를 모두 외워서 한다. 나 말고는 전부 교수님들이 출연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내가 출연하는 부분이 시청률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 본인은 미래학자인가?

아니다. 나는 학위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박사학위를 따고 그것을 기반으로 예측과 조언을 한다. 나는 이와는 다르게 박사학위를 따는 과정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더 배워나가고 있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미래학자는공부를 한 사람이고 나는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동시에 전달하는 사람이다. 카이스트 미래학 대학원은 학기당 수업료가 엄청 비싼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배우지 않고 과정 속에서 진행하면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 미래예보를 하는 이유,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회사를 떠나기 까지는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 평범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그러면서 느낀 것은 꼭 전형적인 그 과정 대로만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기술을 이용해서 돈을 벌면서 자유롭게 사는 삶을 꿈꾸며 이 일을 시작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개인에게 기술을 기반으로 행복한 삶을 찾아주는 것이다. 꼭 남들이 말하는 학교 가서 공부하고 취업해서 돈 버는 소위옳다고 생각하는 길말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 일로도 삶을 살수 있다는 것, 내가 원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미 성공한 사람 말고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있다.

 

▶ 미래는 무엇에 의해서 변한다고 생각하나? 꼭 새로운 기술만이 미래인가?

가끔은 내가 기술적인 어떤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Tech만이 미래는 아니다. 기술이 삶을 바꿀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내가 소개를 많이 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농촌에 있는 훌륭한 건강한 유기농 식자재를 생산하고 지금의 SNS등을 이용해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도 기술이 될 수도 있다. 기술은 너무 빨리 바뀌다 보니 그것만 따라가다 보면 지쳐서 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상투적이지만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이용해서 개인이 행복해지는 삶을 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지는 것 같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Copyright 직장생활연구소회사를 떠난 사람들   kickthecompany.com by Dr.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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