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투명인간이 되어 가는 존재 아빠.

눈코뜰새 없이 바쁜 월요일 오후.
아내에게서 문자 한통이 날아온다.

"주하가 아빠한테 붙여주고 싶은거 다 붙였다.
 당신 딸 맘속엔 아빠 자리가 크다"


내용인즉, 몇 주전에 서점에서 딸아이의 한글공부를 위해 벽에 붙이는 한글 공부판과
스티커 놀이책을 샀는데, 오늘 엄마와 딸아이가 함께 아빠에게 주고 싶은 것을
스티커 책에서 찾아
붙여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행이도 아버지인 나에게는 다소 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모자, 시계,편지,핸드폰,머그컵과 함께 토마토,새우,오렌지,과자, 꽃게 까지 붙어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이것들이 모두 나와 함께했던 일들에 기반한
딸아이의 기억에서 나온 것 이었다는 사실이다. 
모자와 새우 오렌지는 지난달 결혼기념일에 vips에서 함께 외식을 할께 먹고 알려준 것이고 
이때 나는 모자를 쓰고 나갔었다.
편지는 온누리 교회에서 아버지 학교를 할 때 딸에게 쓴 편지를 아이엄마가 냉장고 앞에 붙여둔 것을, 과자는 가끔  집앞에 커피숍에서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아이에게는 머핀을 사준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꽃게는 며칠전에 본 프뢰벨 자연관찰 책에서 본것으로 '멍멍이 개'와 바다에 사는 '게'의 차이점을 한참동안 설명했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다.
핸드폰이야 매일 내가 자기전에 폰으로 음악을 들려주니 아버지 물건중에 가장 먼저 떠올렸을 것이고, 토마토는 아이엄마가 매일 회사 출근전에 잘라주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다.  

얼마나 큰 행복이고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아직은 아빠인 내가 큰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실제로 초등학생들에게 가족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엄마,동생,나" 이렇게는 집의 중심에 크게 자리하고 있고, 아버지는 작게 그려져
스케치북의 구석에 자리하고 있거나 아예 그리지 않는 아이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 
초등학교 교사인 나의 처형의 증언이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그리지 않은 아이에게 아버지는 왜 없냐고 물어보면
"아빤 바빠서 늦게 와요"  "아빤 잠자고 있어요"   "아빤 돈벌러 회사 갔어요" 라는
대답이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진 시대.
그 시대에 자라나는 자녀가 자라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때 그 가정의구성은 어떻게 될까?
아이를 낳지 않는것도 문제이지만 그렇게 적어지고 있는 인구 구성 속에서
힘들게 구성되는 가족에서 아버지가 사라져 버린 가족구성원의 심각한 부조화는
가정이라는 가장 근본이 되는 사회 구성의 주춧돌을 조금씩 흔들어 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의 아버지 들이여.
주말만이라도 회사를 깨끗이 잊자.
그리고 아내와 자녀에게만 몰두하자. 
그것이 완벽한 Refresh가 되어 새로운 한주가 시작될 때 
업무에 더 깊은 몰입을 가져올 수 있을것이다.

당신의 존재가 가족안에서 어떤 위치인지 알고 좌절하여 소주잔을 기울이기 보다는

이번 주말 당장 아이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가 한결 무르익은 봄을 함께 만끽하는 것이
사라져가고 있는 아빠의 존재를 되살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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