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난 사람들 4_방송작가에서 인디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된 박주원


 회사 (2003~2013 10/ 중간에 학업으로 2년 쉼)

: G TV, 서울시청 인터넷 방송, 롯데 백화점, 외환은행 관련 방송 작가  

 

 회사를 떠나서 (2014 1 ~)

: 록 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며 음악 공부 중 

 

 자기소개

저는 얼마 전 홍대로 이사온 박주원 입니다. 현재는 ECE 라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고, 소소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간략히 말해 주세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쓰는 것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2때 국어 선생님 통해서 문예 창작과 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으니 문예 창작과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98년도에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갔다. 과의 특성상 그것으로 돈을 많이 벌거나 할 수 있는 직업을 원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결정이 이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보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문창과에 가면 당연히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 

물론 그 당시 IMF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서 이것 저것을 해야 하는 취업이 힘든 시기는 아니었던것 같다. 지금은 너무 힘들지 않나. 졸업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할 일이 적었다. 주로 출판사, 잡지자, 방송작가로 많이 갔다. 졸업 후 방송작가 생활만 약 10년 정도 일했다. 베이스는 작가일을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이 하고 싶어서 베이스를 잡았고 연습을 했다. 홍대에서 베이스를 한지는 8년 째고 지금 몸담고 있는 밴드는 햇수로 3년째다.  

 

 방송작가의 일은 어떤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대중이 없다. 특히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는 일이 절대로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기획 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정하고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편집이 끝나고 일이 계속 되었다. 밤에 불려나가는 일도 있어 힘들었다. 방송 하나가 마치 단기 프로젝트와 같았다. 퇴근을 해도 퇴근 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방송작가는 방송 소재를 찾기 위해 늘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고 있어야 한다. 최신 트랜드를 아는 것은 기본이고 24절기를 다 알고, 제철과일, 생선, 지방 음식 등을 다 알고 있어야 시의 적절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방송작가는 이번 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짧으면 2주 후 길게는 한달 후를 살아야 한다. 항상 방송 계획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퇴근을 해도 일과 단절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과 함께 사는 느낌이었다. PD가 편집이 끝나면 그걸 보고 맞는 나레이션을 다 만들어야 하고 자막도 써야 한다. 세상에서 영원히 퇴근하지 않는 일이다. 노트북 한대만 있으면 어디서 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했다.

 

 왜 회사를 그만 두었는가?

G TV (케이블 방송), 서울시청, 롯데 백화점, 외환은행 이런 기업에서 사내 방송 작가로 주로 일을 했다. 마지막 직장은 외환은행 이었다.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한 건 G TV에 있을 때 였는데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작가일도 재미 있었고, 베이스도 재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거의 두어시간 잠자면서 베이스도 배우고 일을 했었다. 베이스를 처음 배울 때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일하다 보니 일과 베이스를 병행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 졌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일을 그만 두었을 때 더 후회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다. 방송작가 일은 이 정도면 되었다라는 느낌이 들었고 방송용 말고 진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은 그만 둬도 글을 계속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음악은 누가 당장 지금 너 이거 하지마라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방송에서 뭐랄까 방송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과장하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좀 힘들었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웠다. 롯데 백화점 방송을 준비할 때는 소재를 찾으려고 내 돈 써가며 물건도 사보고 하루 종일 백화점에 살았었다.


 


 방송작가로서 메인 스트림인 공중파로 갈 생각은 안 했는지?

안 했다. 왜냐면 돈이 궁핍한 시절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막내부터 중간이 되는데 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지상파 라도 막내작가의 월급은 정말로 작은 수준이다. 막내작가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울 정도다 보니 개인적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창과를 나와선지는 몰라도 방송작가로 대성하겠다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돈을 번다는 느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외환은행 다닐 시절 세 번째 밴드인 지금의 밴드와 함께 음악을 했다. 오디션 등에서도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맘에 드는 밴드를 만나게 되었다. 밴드의 Potential이 좋고 사람도 좋았다. 20148월에 정식 앨범이 나왔다. 내 생에 첫 앨범이었다. CD 커버, 포스터, 디자인, 녹음, 믹싱까지 맴버들이 다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밴드 안에서도 내가 해왔던 일을 위해 할 일이 있었다. 글 쓰고 방송 만들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직접 보도자료도 썼고 기자도 만나러 다녔고 페이스북 홍보도 했다. 작가라는 첫 번째 직업에 충분히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썼으니 나의 두 번째 하고픈 일인 음악에 시간을 쏟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잘했던 능력(글쓰기, 방송)을 가지고 내가 잘하고픈 일 (밴드 홍보)에 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그만 둘 수 있었다. 2013년 겨울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만 하기로 결정 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홍대 근처로 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돈을 어떻게 벌고 있나?

우선 남편이 벌고 있고, 나는 오전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고 싶은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오전에만 하기 때문에 밴드 일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며 세상을 깨닫는 재미도 있다. 지금은 돈이 목적이 되어서 일한다기 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 수입은 줄었는데?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돈을 좀 버니 라는 어쩔 수 없는 질문.

결론부터 말하면 예전보다 좋다. 직장에 다닐 때 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것 같다. 얻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했다. 홍대 근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진 것의 50% 이상을 버렸다. 집이 작아서 이기도 했지만 버리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버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이사를 하며 몸소 느꼈다. 물건을 버리면서 내가 그 동안 놓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구나. 그래서 행복이 들어올 틈이 없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 내가 버는 돈이 예전에 벌던 것에 비하면 3/1 수준인데 웃긴 건 돈이 모자라지 않다는 거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니 불필요한 것들 거추장스러운 것들에 돈을 쓰지 않게 되고 모자라지도 않게 된 것 같다.  이사하면서 물건을 버리면서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깨달을 것이 없었다면 계속 돈을 더 벌어야 겠다.” 라는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밴드 ECE (Emergency Call Equipment)는 어떤 밴드인가?

장르로는 포스트 펑크, 아트락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맴버들 각자가 장르적 욕심이 많아 장르를 딱히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홍대에서 밴드를 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음악 생각을 계속하며 사는 삶이다. 이것도 하나의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밴드 4명이 모두 추구하는 바가 다르긴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안되는 것을 되게 느낌, 각자의 색이 있으면서 그것이 하나로 녹아드는 음악이 되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음악적으로 정체되지 않게 했고 남들과 다른 음악을 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5년후에는 무얼하고 있을 것 같나? 37살이면 이미 밴드를 하기에는 적은 나이는 아니다. 

5년 후에도 더 재미있는 밴드를 할거다. 계속 쭉. 이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음악은 평생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언제 잘될지 모른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게 두렵다면 재미있는 음악을 하면 될 것 같다. 회사도 사업도 오래 버티는게 이기는 거라고 하는데 음악도 마찬가진 것 같다.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원하는 거라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작가의 자신, 지금 밴드의 베이시스트 로서의 자신, 가정에서의 자신 중 가장 소중한 건 무언가?

미안한 얘긴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 밴드 베이스 주자로서의 내가 소중하다. 남편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와 주고 있다. 아마 남편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거다. 나 때문에 못하는 걸꺼다. ^^

  궁극적인 꿈은 무엇인가?

음악을 오래 하고 싶다. 방송작가는 어떤 틀 안에 있는 느낌 이었지만 음악인으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른 밴드의 프로모션을 돕는 일도 하고 있다. 그 일이 방송작가의 일과 약간의 교집합이 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밴드의 앨범이 나오기 전부터 알리고 기자를 통한 홍보 보도 자료를 쓰는 등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홍보를 위한 모든 글과 관련된 일을 다 하고 있다. 공연 컨셉, 연습 스케치 모든 것을 다 알린다. 밴드들이 이런 홍보 활동을 많이 안 하는데 좋은 밴드가 있었고 컨텐츠 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좋은 음악을 하는 멋진 밴드라는 상품이 있어서 더욱 자신있게 하고 있다. 내가 글도 써봤고 밴드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진정성 있게 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꼭 책을 한 권 쓰고 싶다.어설픈 수집가들이라는 제목도 만들어 놨고 컨셉도 잡아 놨다. 벌써 몇 명 인터뷰도 끝냈다. 살다보니 인생의 흔적이 수집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영화 브로셔를 모으는 사람, 청첩장을 버리기가 어쩌다 보니 미안해 모은 사람, 초코파이 껍질을 모으는 사람, 손 편지를 모으는 사람 등이 있다. 어찌보면 일상의 추억을 수집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디밴드를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 때 기차표를 산것에 메모한 것을 모으는 사람도 기억난다.

 

 회사에 들어가기 너무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쉽게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내가 조금 후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너무 대책 없이 그만두지 말라는 거다. 나도 음악을 1~2년 했던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찾는 시간이 너무 중요하다. 양다리를 걸치라는 말을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쉽게 결정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내가 아는 사람도 IT 개발자의 일도 하면서 음악 기획을 하는데 벌써 2년이 넘게 그 일을 병행하고 있다. 물론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말이다. 내가 음악으로 넘어 오기로 확신이 든 것은 음악에서 무엇을 할 것이라는 목표가 명확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과 자신감이 들고 나서였다. 홍대에서 밴드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커리어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직업을 바꾸고 커리어를 바꾸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현재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완충지대를 반드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회사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나와서 찾으면 안 된다. 회사를 떠나면 시간이 다르게 간다. 너무 빨리 간다


▶ 정말 우연한 기회로 만나서 인터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긴 시간의 인터뷰를 한 것은 서로 수다가 많아서

       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얻는 즐거움이 컷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TV 속 노홍철

       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삶에 행복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건 너무 많은 것을 움켜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잊지 못하겠다. 일터에서 누구 보다 치열했고 또 새로운 무대에서 나만의 무기로

       치열한 즐거움을 연주하는 박주원님을 열렬히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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